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버지니아 대학교 (문단 편집) == 역사 == ||<#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80px-University_of_Virginia_Rotunda_2006.jpg|width=100%]]}}} || || {{{#232D4B '''The Rotunda, University of Virginia'''[* [[토머스 제퍼슨]]이, 로마의 [[판테온]]을 모델로 삼아, 자연의 권위와 이성의 힘(authority of nature and power of reason)을 나타내기 위해 디자인한 건물.]}}} || 1800년, 토머스 제퍼슨은 새로운 대학을 하나 설립하자는 마음이 있었다. 당시 미국에는 수준 높은 대학이 별로 없었던 상태였고, 버지니아에 이미 자리잡고 있던 [[윌리엄 & 메리 대학교]]는 종교적 성향과 과학 교육의 부재로 인해 제퍼슨이 학을 뗀 상태였다. 이에 제퍼슨은 자신의 교육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대학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1817년에 제퍼슨이 직접 설계한 건물들의 공사가 시작되었고, 1819년에는 버지니아 주정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아 개교하기에 이르른다. 1825년에 첫 학생들이 입학하였고, 이듬해 7월 4일에 제퍼슨이 사망하였다. 특이한 점이 설립 당시에는 총장이라는 직책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제퍼슨이 총장 같은 권위적인 직책이 존재하면 학생과 교수진 사이의 관계가 멀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 제퍼슨이 초대 이사장 겸 학장을 지냈고, 4대 대통령 제임스 메디슨과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각각 2대, 3대 학장이 되었다. 제퍼슨이 버지니아 대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에 대한 여러 일화는 유명하다. 그 중에서 일단 건물을 지으면서 그 당시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값비싼 대리석 기둥장식들을 유럽에서 직접 수입해 왔는데, 자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 통과시킨 사치품에 대한 세금을 내야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자, 제퍼슨이 그 기둥장식들이 사치품이 아니라 건축학도들을 위한 교과서라고 주장하여 세금을 면제받았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명하다 ~~완전 탈세~~ 앞서 말했듯이 제퍼슨은 종교가 학문의 주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교회나 성당을 중심으로 지어진 그 당시 대학들과는 달리 로턴다 (Rotunda)라는 건물 (로마의 판테온을 모델로 삼았다)을 중심으로 캠퍼스를 설계하였다. 제퍼슨의 이런 신념은 계승되어 1890년대까지만 해도 버지니아대 캠퍼스에는 종교시설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학생과 교수들 사이의 유대관계를 매우 중요시 여겨 열 개의 파빌리온을 지어서 교수들의 주거지와 강의실로 삼고, 파빌리온 사이마다 방을 여러 개 만들어 학생들이 교수 옆에서 살게 만들었다. 제퍼슨이 설계한 이 건물들을 통틀어 Academical Village라고 부르는데,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그리고 1976년에는 "미국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에 선정되었다 (다만 이 모든 것을 흑인 노예들이 지었다는 점이 두고두고 논란의 여지가 된다). 버지니아 대학교는 남부의 부유한 집안 자제들을 끌어모으며 계속 성장하였고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860년에는 [[하버드 대학교]] 다음으로 제일 많은 학생을 가진 대학,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이 되었다. 19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별명이 "남부의 자랑"이었을 정도. 그러다가 남북전쟁이 터지자 [[남부연맹]] 편에 서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버지니아 군사대학]] 다음으로 제일 많은 1,481명의 버지니아대 학생들이 남부연맹군 장교로 복무하였고, 대학건물들은 부상병들을 위한 병원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 때 사망한 병사들이 대학교 공동묘지에 묻혀있다. 1865년 3월에 샬러츠빌이 북부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남부의 여러 대학들과 같이 불에 탈 뻔하였으나 교수진이 북부군 사령관을 찾아가 손이 닳도록 싹싹 빈 덕에 파괴되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의 휴유증이 워낙 커서 버지니아 대학교의 성장을 크게 저하하는 효과가 있었다. 1904년에 최초로 총장이라는 자리가 생겼다. 1970년에는 최초로 여성들의 입학을 허용했는데, 이 때 여학생들을 가르치기 거부한 교수들이 무더기로 사직하면서 수많은 젊은 교수들을 채용해야 했다. 이 때 채용된 젊은 교수들의 정년퇴직이 점점 다가오면서 현재 버지니아대는 교수진의 대규모 물갈이가 예상되고 있다. 2010년에는 최초의 여성 총장이 테레사 설리번 (Teresa Sullivan)이 취임하였으나 2012년에는 이사회에 의해 해임되었다가 교수진과 학생들의 반발에 의해 재임용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버지니아 주지사가 이사회의 해체를 위협했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2016년 3월, 이곳 출신의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억류되었다. 2019년 2월, 이 곳 출신이자 [[자유조선]] 소속인 [[크리스토퍼 안]]이 [[2019년 주스페인 북한 대사관 습격 사건|스페인의 북한 대사관을 습격했고,]]같은 해 4월 체포됐다. 2019년 10월 동문 출신 부동산 사업가인 데이비드 월런타스가 대학 사상 최고 기부금인 1억달러(1,200억원)를 대학의 제퍼슨 장학재단에 기부했다. 이 기부금은 부모가 대학을 나오지 못한 저학력 계층 출신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해주는 용도로 쓰이게 된다.[[https://news.v.daum.net/v/2019101318052284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